| 지금까지 지적한 우리 나라 낙태의
실태는 어느 정도 세계 공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약 8억 이상의 여성이 매년 피임을 하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요즘 수술을
받지 않고 임신 중절을 시킬 수 있는 신약인 프랑스제 RU-486과 미국제
에포스테인이 개발돼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고, 프랑스와 중국은
이미 RU-486의 공식적인 사용을 허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리
신빙성이 높지 않은 어느 주간지는 화장품 회사들이 특수화장품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태아의 사체를 사들이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낙태에 나타난 생명
경시 풍조, 성윤리의 타락, 물질 만능주의, 이런 사상들을 은연중에
부추기는 구조적 모순 등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낙태에 있어서도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들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들이 있다.
첫째, 낙태에 의하여 죽어가는
대부분의 태아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아들을 낳으면 가족계획(산아
제한의 잘못된 표현)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요즘 초등학교에
입학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짝으로 배정받게 되면 "엄마, 내 짝
여자다!"라고 외치면서 마치 개선 장군처럼 의기 양양하게 되는데,
그만큼 남자보다 여자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여자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철저한 차별을 받는다. 태어난 다음에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웬만한 가정에서는 미리 불법적인 양수 검사를
해서 남자들만 뽑아 내는 것을 거의 당연한 처사로 보는 풍조가 이를
잘 증명한다.
둘째, 피임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리듬에 의한 월경 주기법은 가장 자연적이고 확률이 높지만 사랑의
극치인 성을 산술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회용 불임 수술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나중에 다시 출산을
원할 때 재수술을 해야 되는 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이외의 인위적
방법은 언제나 실패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피임약, 루프, 폼으로 대표되는 인위적 방법이며,
그 중에도 비교적 확률이 높은 피임약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피임의 절대 다수는 일회용 불임 수술이다. 그리고 불임 수술을
받는 대상은 대부분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나라
사람은 복잡한 방법보다는 단칼에 잘라 버리는 불임 수술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피임약이 계속 팔리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제약 회사들이 불평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이다.
셋째, 그러나 내가 가장 큰 한국적인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낙태가 이렇게 성행할 때까지 그것이 한번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가톨릭에서는 낙태뿐만 아니라 리듬 방식에 의한
피임 이외의 모든 종류의 피임까지 금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었다. 피임은 과연
생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그리고 그것이 정당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피임이 가장 이상적인가? 주기에 의한 것인가? 루프에 의한
것인가? 폼에 의한 것인가? 또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는 낙태가
생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낙태를 정당화시키는 조건은 무엇이며
정당화시키지 않는 조건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서, 강간에 의한 임신은
언제나 낙태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선진 외국에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주장과 "낙태는 이혼과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행위일 뿐이다"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심각하게 토론했으며, 이런 토론은 지금도 강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1973년의 '로우 대 웨이드'의
판결로 대법원이 사실상 낙태를 합법화시켰던 미국에서는, 이 역사적인
판결이 나온 지 16년이 되는 1989년 7월 3일 대법원이 다시 격론 끝에
주 정부에 임산부의 낙태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부분적인 승리"를 안겨 주기도 했다. 하여간
생명론자(life-severs)와 선택론자(life-choicers)-혹은 생명 우선론자(pro-lifes)와
선택 우선론자(pro-choicers) -의 논쟁은 아직도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희랍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듯이
모든 문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피임과 낙태에
대해서도 분명히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찬반 양론의
토론이 완전히 생략된 상태, 이야말로 희한한 일이 아닌가? 역사는 빨리
진행될 수도 있으며 늦게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건너 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토론의 과정을 완전히 생략하는가?
나는 앞에서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그중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태어나기
힘들게 된 첫번째 경향은 오랫동안 우리 나라에 내려온 남아 선호 사상
전통의 책임이며, 일회적인 불임 수술을 선호하는 두 번째 경향은 당국의
결과 제일주의 정책에 책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피임과 낙태의 문제를 생명
외경 사상과 연결하여 한번도 심각하게 토론하지 않았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옛부터 슈바이처의
생명 존중 사상 이상으로 인간의 탄생을 중요시했으며, 최근까지만 해도
피임이란 천도(天道)를 거역하는 행위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은 제 먹을 가지고 태어난다"고까지 말했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러면 우리는 왜 피임과 낙태의
문제(특히 낙태의 문제)를 심각하게 토론해야 되는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시민으로서의
"개인의 자율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념이나
실용적인 이유를 내세워서도 어떤 단체나 국가도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는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베어드와 로젠바움이
편한 「낙태의 윤리」라는 책에 쓴 '서문'에 잘 지적되어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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