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수 『새로쓴 형법각론』,박영사


Ⅰ. 총설

1. 체계

낙태죄의 기본적 구성요건은 부녀의 자기낙태죄(제269조1항)와 단순한 촉탁 . 승낙에 의한 이른바 동의낙태죄(제269조2항)이다. 이에 비해 의사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자가 부녀의 촉탁 . 승낙을 받아 낙태를 하는 이른바 업무상 동의낙태죄(제270조 1항)는 동의낙태죄에 비해 객관적 신분관계로 불법이 가중된 가중적 구성요건이 된다. 부동의낙태죄(제270조 2항)는 동의낙태죄보다 불법이 가중된 가중적 구성요건이다. 우리 형법상 낙태죄의 미수범은 처벌되지 않지만, 동의낙태죄 . 업무상 동의낙태죄 . 부동의 낙태죄의 결과적 가중범으로 낙태치사상죄(제269조3항, 제270조 3항)를 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 주의 : 통설은 업무상 동의낙태죄를 책임가중적 구성요건으로 본다. 그러나 신분은 행위주체를 구성하는 객관적 요소이고, 행위주체는 객관적인 불법구성요건요소이므로, 객관적 신분에 의한 형의 가중은 원칙적으로 책임가중이 아니라 불법가중으로 보아야 한다.

 

2. 보호법익

태아의 생명, 즉 생성중에 있는 생명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요구에 비추어 형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다. 낙태죄의 보호법익에 관하여는 태아의 생명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고 임부의 생명 . 신체를 부차적인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견해(유기천, 이재상, 배종대)와 태아의 생명 . 신체를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고 임부의 생명 . 신체를 부차적인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견해(강구진, 김종원, 진계호, 정성근)가 있다.

 

[참고] 낙태죄의 보호법익을 일률적으로 논하기보다는 우리 형법상 낙태죄의 체계를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세분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기낙태죄와 단순동의낙태죄 및 업무상 동의낙태죄에서는 태아의 생명만이 보호법익이 된다. 그러나 부동의낙태죄에서는 태아의 생명이 주된 보호법익이지만 임부의 의사결정의 자유도 부차적인 보호법익이 된다. 이에 비해 낙태치사상죄는 태아의 생명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지만 임부의 생명 . 신체의 완전성도 부차적인 보호법익이다.

 

3. 보호정도

낙태죄의 구성요건을 그 보호정도의 관점에서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관해서 침해범설은 낙태를 임신중절에 의한 태아의 살해로 파악하는 데 반해(이재상), 다수설인 위험범설은 낙태를 자연분만 전에 앞서 조기에 인위적으로 배출하는 행위와 모체 내에서 행하는 태아의 살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하여 다시 살해했을 때, 위험범설에서는 낙태죄의 살인죄의 경합범으로 보지만, 침해범설에서는 낙태미수와 살인죄의 상상적 경합으로 보게된다.

 

[참고] 낙태죄가 위험범이라면 다시 추상적 위험범인가 구체적 위험범인가가 문제된다. 양자의 구별실익은 생존능력 있는 상태로 태아를 배출한 인공출산의 경우도 낙태죄가 되느냐에 있다. 이 경우 구체적 위험범설은 낙태죄의 성립을 부인하고(강구진, 98면; 배종대, 135면), 추상적 위험범설은 낙태죄의 성립을 인정한다(정성근, 87면). 낙태미수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는 현행 형법체계하에서는 낙태의 의사로 분만기에 앞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행위만 있으면 낙태죄는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분만기 이전에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우리 형법의 태도라고 보여지므로 추상적 위험범설이 타당하다. 이것이 약자 보호를 위한 헌법의 기본적 보장정신과도 합치한다.

 



4. 낙태에 대한 규율의 경향

(1) 낙태에 대한 논란
형법상 낙태죄에 의한 태아의 생명보호를 어느 범위까지로 할 것인가는 형사정책적으로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 중의 하나이다.

진보적 경향은 「내 배는 나의 처분에 속한다」(Mein Bauch gehört mir!)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이 입장은 태아의 보호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만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법익보다 언제나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태아를 정상적으로 출산할 것인가 중절할 것인가는 여성의 자연법적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자연법적 권리라면 태아의 생명의 불가침성도 자연법적 권리라는 사실을 이 입장은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이익과 태아의 생명법익 사이에는 가치교량이 필요하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이에 비해 보수적 경향은 「낙태는 살인이다」(Abtreibung ist Mord!)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이 입장은 주로 기독교윤리신학에서 주장되고 있다. 즉 수태순간부터 태아의 생명도 사람의 생명과 같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일정사유가 발생했을 때 일정기간 안에 시행하는 낙태는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현대사회의 낙태에 대한 형법규율의 일반적 경향을 설명하지 못한다.

(2) 기간해결방식과 적응해결방식
태아의 생명보호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이익교량의 대상으로 삼고 상황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에는 기간해결방식(Fristenmodell)과 적응해결방식(Indikationenm
odell)이 있다.

기간해결방식은 일정한 기간 안에 행하여진 낙태는 언제나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낙태의 자유화에 접근하는 방식이긴 하나 그 자유의 제한은 항상 헌법적 검토의 대상이 된다. 적응해결방식은 낙태의 자유를 제한하여, 낙태의 허용기준을 임신중절에 적응하는 의학적. 우생학적 이유, 형사정책적 . 윤리적 이유 등에서 구하는 입장이다. 이 방식은 제한된 범위내에서 낙태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입법태도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모자보건법도 적응해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오늘날 낙태에 관한 형법적 규율의 일반적 경향은 적응해결방식을 주로 하여 여기에 일정한 기간상의 제한을 가미하는 방식이다.

(3) 입법론
오늘날 만연된 성개방과 자유화된 성풍속 및 가정과 전통윤리의 붕괴로 우리나라에서 낙태율은 연간 150만 건에 달하고 있다. 이제 형법은 심각한 도덕적, 윤리적, 인간학적 근본문제를 자유화한 미명아래 외면해서는 안될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존재 중 가장 약한 자가 태아이다. 낙태는 가장 약한 자를 강한 자들이 편의에 따라 살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강한 자들이 기준에 의해 가장 약한 자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 그것은 점차 덜 약한 자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영아살해와 유기, 아동학대의 증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아제한이나 아들 또는 딸의 선호를 위한 낙태는 절대로 금지시켜야 한다. 다만 태아의 생명권과 모체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경우에 한해 모체의 생명을 위하여 태아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한 경우로는 임신을 계속할 수 없는 특별한 상황, 즉 모체의 구체적 생명위험이 의학적으로 검증된 때라고 해야한다.

그 이외의 경우, 즉 산모의 건강을 위하여라든가 우생학적 원인 . 성범죄로 인한 원인, 사회윤리적 원인(근친상간) 등은 태아의 고유한 생명권을 포기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 단지 강자들의 편의와 공리적 사고가 개재되었을 뿐이므로 낙태의 정당화 사유로 입법화하는 것은 문제이다. 이상의 제한안에서도 낙태 전에 반드시 태아를 출산시킬 가능성에 관해 전문기관과 상담하고 상담 후 일정기간 경과후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상담모델의 도입, 낙태정당화사유 확인의사와 낙태시술 의사의 분리 등이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